H마트에서 울다, 한국 음식으로 시부저기 이어진 핏줄

Crying in H Mart, 2021
미셸은 엄마가 돌아가신 뒤로 H마트에만 가면 웁니다.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미셸은 어머니에게서 한국 음식 문화를 접했습니다. 어머니가 암 투병으로 돌아가신 후 사 먹던 김이 어디 거였냐고 물어볼 사람도 없는데, 여전히 한국인인지 의문이 듭니다. 미셸은 지난 5년 사이 이모와 엄마를 암으로 잃었습니다. 두 분에 대한 추억을 찾으려고 H마트에 갑니다.

청소년기에 미셸은 또래 사이에 섞이려고 애쓰며 지냈고, 소속을 증명하려고 느끼면서 성인이 됐습니다. 미국과 한국이라는 두 세계 중 어느 세계에도 온전히 속할 수 없었습니다. 반만 인정받고 반은 이방인 취급을 받았습니다. 엄마에게서 "너 같은 사람은 여태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다."는 소리도 들으며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엄마는 휴가 여행을 다녀오며 사 온 카우보이 부츠를 일주일 동안 신고 다니며 길들여 보내주기도 했습니다. 미셸이 처음 신을 때 발이 까이지 않고 편안하게 신을 수 있게 하려고 그랬습니다. "널 편안하게 해줄 수만 있다면 엄마는 어떤 고통도 감수할 거라고, 그게 바로 상대가 너를 진짜 사랑하는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이니까요.

장례식이 끝나고 투병 생활 중 엄마가 드셨던 음식 중 잣죽을 만들었습니다. 요리법은 간단했지만 시간이 걸리는 요리였습니다. 화려하고 값비싼 요리가 아니라 담백한 잣죽이 진짜로 원하는 요리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한국 이모 집에서는 마침 생일이어서 이모가 끓여준 미역국을 먹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자기를 낳아준 어머니를 생각하는 의미에서 생일에 미역국을 먹는 전통이 있는데 새로운 의미가 생겼습니다.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마치 엄마의 자궁 속으로 돌아가 그 안에서 자유롭게 떠다니는 기분"이었습니다. 그것은 핏줄(blood ties)이었습니다. 미셸이 처음 한 말은 엄마라는 한국말입니다. 그다음엔 맘(mom). 엄마를 두 가지 언어로 부르기 시작하며 엄마만큼 날 사랑해 준 사람은 없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세상에 엄마만큼 내 기분을 있는 대로 잡쳐놓을 수 있는 신랄한 사람도 없지만, 또 우리 엄마만큼 내가 아름답다고 느끼게 만드는 사람"도 없습니다. 남에게 아낌없이 베푸는 자애로운(loving) 엄마보다 온전히 자신만의 매력을 지닌 사랑스러운(lovely) 엄마였습니다. 미셸은 엄마가 돌아가신 후부터 모든 일이 잘 풀렸습니다. 전업 음악가가 되어 밴드 투어를 시작했고, 이 책도 베스트셀러가 됐습니다. 미셸은 "만일 신이 존재한다면 엄마가 신의 목이라도 졸라서 내게 좋은 일들이 일어나게 해달라고 요구했을" 거라고 믿습니다.

이제 미셸은 엄마 생각이 나면 H마트에 갈 겁니다. 그리고 한국 음식을 만들며 가장 한국적인 엄마에게서 위로를 받을 겁니다.

H마트에서 울다Crying in H Mart, 2021/미셸 자우너Michelle Zauner/정혜윤 역/문학동네 20220228 408쪽 16,000원


덧. 훌륭한 번역 덕분에 정말 좋은 우리말을 배웠습니다.
시부저기 : 별로 힘들이지 않고 살짝(슬쩍, 저절로)
도저하다 : (학문이나 생각 등이) 깊고 철저하다. (생각이나 몸가짐이) 올곧고 흐트러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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