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말 - 송경동

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건강은 괜찮으냐고 사람들이 묻는다.
나도 오래 살고 싶다.
왜냐하면 이 세계는 참 아름다운 곳이기 때문이다.

···이번 정권에서는 끌려가는 일보다
밥을 굶어야 하는 일이 늘었다. 그게 오히려 고됐다.
단식만 도합 71일을 했으니 29일만 더 채우면
마늘도 쑥도 먹지 않고 정진한 나도
단군신화에 나오는 곰처럼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사람이 되고 싶은데 나이 들어갈수록
그게 좀체 쉽지 않다는 것을 배운다.

···난 곡류와 단백질만을 섭취하며 자라오지 않았다.
대다수 인류가 실현하는 끊임없는 사랑과 노동과 헌신,
그 선한 힘을 나눠 받으며 이만큼이나마 자라왔다.
이 길이 맞는 길인지 가끔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함부로 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건 그 때문이다.
그 모든 생명과 물질들에게 감사드린다.

···얼마 전 지구에서 가장 먼 별이 발견되었는데
129억 광년 떨어진 곳에 있는 '에렌델'이라 한다.
빛의 속도로 가도 129억년이 걸린다는 머나먼 곳.
내가 나에게, 내가 당신에게 다가가는 데도
그만큼의 시간이 걸렸던 것이라고 믿어주면, 고맙겠다.

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송경동/창비 20220422 204쪽 11,000원

부디
우리가 치워야 할 쓰레기가
당신들이 아니길 바랍니다1

찰칵, 찰칵 소리가 한 사람 한 사람
수갑 채우는 소리로 들리는 이번 생애는
더이상 찍힐 설움도
눈물도 남아 있지 않았다2

그런 참혹한 애도의 시간에
어느 누군가는 달러 지수를 살피고
원유와 가스와 니켈과 밀 관련 주식을
쓸어 담지3

인생에서 꼭 필요한 사랑의 원소들
이 추운 겨울날 저 따뜻한 햇볕처럼
모두에게 골고루 나눠지는 온정과
눈부심을 배달하는 무욕의 택배기사4

서로 말라가는 몸을 보며 천천히 말들도 말라갔다5

기본의 법을 뛰어넘어
새로운 법을 만들려고 싸울 때만이
비로소 노동자는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간명한 사실밖에
변호할 게 없었다 한다6

그런데 누가 지금도 우리에게
가만히만 있으라 하는가7

염결성이라는 말을 특히 좋아했지
짜디짠 삶의 염분에 절여져
쉬 부패하지 않는 정신8

노동자 민중 정치를 하겠다는 이들 중에도
나는 대장만 하고 싶어요 하는 이 많다9

사랑과 연대라는 가장 오래된 백신10

우리 모두가 함께
다시 이 야만의 세계를 건너야 한다는
굳건한 약속을 세운다11

빈곤이라는 치명적인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함께 죽는다12

가능하다면 그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를 써주고 싶다13

혁명이 늪에 빠지면
예술이 앞장서야 한다 하셨죠14


시인은 "지금껏 비겁하게 살아남았고 오늘도 여전히 비루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자조했다. 그 문장 앞에서 더 비겁하고 더 비루한 나는 죄송하고 또 죄송한 마음으로 사죄했다.


  1. 청소용역노동자의 선언
  2. 포토라인
  3. 인간의 양면
  4. 나무에게 보내는 택배
  5. 목욕탕 순례기
  6. 노동자 변호사
  7. 당신들만의 천국에서 우리는 내리겠다
  8. '결'자해지
  9. 도태
  10. 가장 오래된 백신
  11. 평화의 소녀상을 세우며
  12. 돼지열병
  13.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
  14. 백발의 전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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