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여름 예찬 - 노동의 미래를 실현하는 서사적 일상
ⓒ노동의 미래를 실현하는 정여름 |
노동의 미래는 노동하지 않는 것입니다. 블루스카이에는 노동의 미래를 실현하는 묘생 10년차 정여름이 있습니다.
집사가 올리는 사진을 보면 정여름의 일상은 언제나 쩍벌 자세로 누운 채 자고 있습니다. 몸을 비틀어 엎드린 자세라도 하면 모두가 긴장하며 무슨 변고가 났나 걱정합니다. 역동적인 너무나 역동적인 자세를 한 희귀장면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정여름을 보며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합니다. 나른한 오후에는 정여름을 보며 어서 따라 하자고 선전·선동하곤 합니다.
정여름은 생존을 위해 노동하지 않습니다. 노동은 집사가 합니다. 정여름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합니다. 노동의 미래는 생존을 위해 일하는 게 아니라 꿈꾸는 일을 하는 거니까요.
정여름은 노동의 미래입니다. 인디언은 생활에 필요한 재화를 생산하는 것 이상으로 노동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생산력이 낮은 게 아닙니다. 효율이 높은 도구가 있어도 더 많이 생산하기보다 더 적게 노동하는 쪽을 선택했습니다.1 토착 인디언은 유로아메리카인들에게 거의 절멸되었지만 인디언의 삶은 모든 노동의 종착지였습니다. 정여름은 노동의 종착지를 넘어 노동의 미래를 실현하고 있습니다.
정여름의 일상은 서사적입니다. 노동 착취에 직면한 인간 삶의 나약함에 맞서 노동의 미래를 매일매일 실천하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이 오마주하려고 애씁니다. 인간은 긴 인생 중 십여 년 가량 정여름을 따라 하지만 인간이 오마주하는 시간은 정여름의 평생입니다.2 정여름의 하루하루는 반려동물이 보여주는 반려인간을 위한 팡세입니다.
정여름은 선구자입니다. 멍때리는 시간이야말로 삶을 채우는 시간3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상상력이 생깁니다. 자본은 변신을 거듭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를 앗아갔습니다. 정여름은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아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초연합니다. 정여름은 인간이 꿈도 꾸지 못하는 노동의 미래를 한결같이 실천하는 선구자입니다.
세상이 흉흉하지만 정여름 덕분에 잠시 잊습니다. 꿈을 꿉니다. 인류 발전에 기여한 사람에게는 자본가가 만든 노벨상을 줍니다. 만국의 노동자는 노벨상과 비등한 〈노동의 미래 정여름상〉을 만듭시다. 해마다 고양이의 날인 8월 8일에 바람직한 노동의 미래를 위해 힘쓰며 삶을 채우는 유별난 생물에게 줍시다. #오늘의정여름을 봤다면 노동의 미래를 실현하는 정여름을 길이길이 기억합시다.
노동의 미래를 보려면 #오늘의정여름4을 보시라. 휴먼, 꿈꿉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