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녀 힙합 - 집밖의 세계를 일구는 둘째의 탄생
차녀가 이렇게 구구절절 서러운 줄 몰랐습니다. ''첫딸은 살림 밑천'이라고도 하지만, 그런 위로조차 건넬 수 없는 '잉여'이자 '덤'으로 여겨(12)'지고, '첫째가 자신에게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 때문에 중압감을 느낀다면 차녀는 어둠 속에서 대사 한 줄이라도 더 얻어보려고 발버둥치는 무명배우 같(21)'거나, 차녀가 '소유하는 모든 것이 중고(133)'인 줄 몰랐습니다. 작가처럼 '아들을 낳기 위한 여정에 잘못 도착한 택배처럼 덩그러니 놓여 있는 '낀 딸'일(12)' 때는 더욱 말이죠.
차녀는 세 갈래로 나뉩니다. '딸이 둘 있는 집의 차녀는 차녀이자 막내'이고, '밑에 여동생이 있는 차녀는 차녀 카테고리에서 다시 중녀로 분류'되고, '세 자매 중 둘째는 막내인 차녀보다 애매한 존재라 아래위로 치(254)'입니다. 차녀 앞에는 세 갈래의 미래가 나타납니다. '부모님이 세번째 출산을 감행하여 아들이 태어남으로써 중간에 낀 딸이 되거나, 세번째도 딸이어서 세 자매 중 중녀가 되거나, 이대로 차녀이자 핵가족 시대의 새로운 막내로 살아가거나. 어느 길로 가든 다른 갈래의 고통이 기다리고 있(88)'습니다.
중간 아이 콤플렉스Middle child syndrome라고 있습니다. '가운데 아이는 출생 순서상 집에서 배제되거나 무시되거나 방치될 가능성이 높기에, 사진도 가장 적고 양육자가 그들의 특성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19)'는 것입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가족 구성원의 짬 처리반으로 살며 몸에 익힌 생존 기술은 자신을 내세우기보다는 주변을 두루 돌보고 항상 배려해야 한다는 한국 여성 훈육법과 만나 시너지(69)'를 냅니다. 식빵으로 비유하자면 차녀의 몫은 언제나 테두리입니다.
'딸이 둘 이상인 집에서 스타일 차이가 생기는 데에는 출생 순서에 따른 양육자의 욕망이 반영(131)'됐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회가 딸에게 애교, 효도, 중재 3종 세트를 뜯어내려고 눈이 벌겋더라도 아들 없는 집에서 장녀는 집안 적장자(74)'입니다. '귀찮은 걸 귀찮다는 이유로 안 할 수 있고, 불편한 것을 가족에게 표현할 수 있(180)'습니다. '장녀는 양보를 강요받지만, 양보의 역설은 가진 자만이 할 수 있는 행위(110)'입니다. 차녀는 탐날 만한 걸 가지지 못했으니 양보란 걸 해보지도 못합니다.
설상가상 차녀는 어른이 되자마자 발효식품과의 전쟁에 내던져집니다. '된장녀'와 '김치녀'라는 혐오 표현이 유행하면 그런 여자가 아님을 입증해야 했습니다. ''이대생' '된장녀' '꼴페미'. 이 도식화된 편견은 아주 촘촘하게 언행을 제약하고, 부당한 평가를 덮어씌(287)'웁니다. '중년 남성은 자신이 개저씨가 아님을 증명하고자 애쓰지 않(289)'아도 되는데 말입니다. 차녀는 환장하겠습니다.
사막에 떨어뜨려도 선인장으로 김치를 담가 먹을 수 있는 작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차녀의 서러움을 외치겠다고 쓴 책이지만, 이거야말로 진화와 업데이트가 가능한 가족 안에 있기에 가능한 작업(275)'이었다고. '나로는 충분하지 않을까봐 마음 졸였던 모든 딸들이 이제 자기 자신을 더 좋은 곳으로 데려가길(307)' 바란다고.
제목에 "힙합"이라는 말이 붙어 있기도 하지만, 실제로 책 내용을 압축하고 대한민국 차녀로 살아가는 비극과 서러움을 요약하고 있습니다. 차녀의 서러움을 하소연하는데 키득키득 웃음이 납니다. 첫 문장부터 마지막 문장까지 차녀들의 힙합처럼 들립니다. 이 모든 것은 재밌게 쓴 작가 탓입니다.
세상의 모든 여성, 특히 차녀에게 세상의 모든 찬사를 보냅니다. 고맙습니다. 더 배우겠습니다.
차녀 힙합/이진송/문학동네 20220530 308쪽 16,000원
차녀는 세 갈래로 나뉩니다. '딸이 둘 있는 집의 차녀는 차녀이자 막내'이고, '밑에 여동생이 있는 차녀는 차녀 카테고리에서 다시 중녀로 분류'되고, '세 자매 중 둘째는 막내인 차녀보다 애매한 존재라 아래위로 치(254)'입니다. 차녀 앞에는 세 갈래의 미래가 나타납니다. '부모님이 세번째 출산을 감행하여 아들이 태어남으로써 중간에 낀 딸이 되거나, 세번째도 딸이어서 세 자매 중 중녀가 되거나, 이대로 차녀이자 핵가족 시대의 새로운 막내로 살아가거나. 어느 길로 가든 다른 갈래의 고통이 기다리고 있(88)'습니다.
중간 아이 콤플렉스Middle child syndrome라고 있습니다. '가운데 아이는 출생 순서상 집에서 배제되거나 무시되거나 방치될 가능성이 높기에, 사진도 가장 적고 양육자가 그들의 특성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19)'는 것입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가족 구성원의 짬 처리반으로 살며 몸에 익힌 생존 기술은 자신을 내세우기보다는 주변을 두루 돌보고 항상 배려해야 한다는 한국 여성 훈육법과 만나 시너지(69)'를 냅니다. 식빵으로 비유하자면 차녀의 몫은 언제나 테두리입니다.
'딸이 둘 이상인 집에서 스타일 차이가 생기는 데에는 출생 순서에 따른 양육자의 욕망이 반영(131)'됐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회가 딸에게 애교, 효도, 중재 3종 세트를 뜯어내려고 눈이 벌겋더라도 아들 없는 집에서 장녀는 집안 적장자(74)'입니다. '귀찮은 걸 귀찮다는 이유로 안 할 수 있고, 불편한 것을 가족에게 표현할 수 있(180)'습니다. '장녀는 양보를 강요받지만, 양보의 역설은 가진 자만이 할 수 있는 행위(110)'입니다. 차녀는 탐날 만한 걸 가지지 못했으니 양보란 걸 해보지도 못합니다.
설상가상 차녀는 어른이 되자마자 발효식품과의 전쟁에 내던져집니다. '된장녀'와 '김치녀'라는 혐오 표현이 유행하면 그런 여자가 아님을 입증해야 했습니다. ''이대생' '된장녀' '꼴페미'. 이 도식화된 편견은 아주 촘촘하게 언행을 제약하고, 부당한 평가를 덮어씌(287)'웁니다. '중년 남성은 자신이 개저씨가 아님을 증명하고자 애쓰지 않(289)'아도 되는데 말입니다. 차녀는 환장하겠습니다.
사막에 떨어뜨려도 선인장으로 김치를 담가 먹을 수 있는 작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차녀의 서러움을 외치겠다고 쓴 책이지만, 이거야말로 진화와 업데이트가 가능한 가족 안에 있기에 가능한 작업(275)'이었다고. '나로는 충분하지 않을까봐 마음 졸였던 모든 딸들이 이제 자기 자신을 더 좋은 곳으로 데려가길(307)' 바란다고.
제목에 "힙합"이라는 말이 붙어 있기도 하지만, 실제로 책 내용을 압축하고 대한민국 차녀로 살아가는 비극과 서러움을 요약하고 있습니다. 차녀의 서러움을 하소연하는데 키득키득 웃음이 납니다. 첫 문장부터 마지막 문장까지 차녀들의 힙합처럼 들립니다. 이 모든 것은 재밌게 쓴 작가 탓입니다.
세상의 모든 여성, 특히 차녀에게 세상의 모든 찬사를 보냅니다. 고맙습니다. 더 배우겠습니다.
차녀 힙합/이진송/문학동네 20220530 308쪽 16,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