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꺼진 공장과 노동의 미래
ⓒFuture of Work |
자본은 착취를 통해 이윤을 만듭니다. 자본은 지뢰마저 상품으로 둔갑시켜 지구 구석구석에 팔아먹었습니다. 급기야 어린아이의 몸을 산산조각 나게 했습니다. 국제정치 전문가 파리드 자카리아는 "내가 한창 자라나고 있을 땐 세상이 달랐다. 이윤이란 것은 최대화하는 게 아니라 절절해야 하는 시대였다"1고 회고합니다. 냉전 시대는 소련식 사회주의와 경쟁하려고 자본과 노동이 사회민주주의적 협약 형태를 띤 겸손한 자본주의였다는 의미입니다. 자본주의는 위기 때마다 교묘하게 변신해서 경제 유형만이 아니라 사회의 유형이 됐다며 미국의 철학자 낸시 프레이저는 지금을 식인 자본주의라고 명명했습니다.
케인스가 1930년에 발표했던 〈우리 손자 손녀들이 누릴 경제적 가능성(Economic Possibilities for Our Grandchildren)〉이라는 에세이에서 100년 후에는 일주일에 15시간만 일해도 경제적 문제에서 해방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100여 년이 지나 생활 수준은 몇 배나 높아졌지만 경제적 문제가 해결되어 일과 저축으로부터 해방된다는 미래는 오지 않았습니다.
4차 산업혁명의 시작이라는 공유경제는 부를 공유하지 않습니다. 주문 8분 만에 오는 퀵 배달은 정상 속도가 아닙니다. 사람을 비인간적으로 취급해서 만들어내는 결과입니다. 사람을 갈아 넣어 이루는 것은 기술혁신이 아닙니다. 사람을 잡아먹는 착취 경제입니다.
미래의 공장은 불 꺼진 공장입니다. 발전하는 기술은 자동화가 쉬워지고 저렴해지면서 완전 자율화 공장으로 갈 것으로 예측합니다. 사람 없이 로봇이 24시간 운전하는 무인 자동화 공장은 조명이 필요 없습니다. 4차 산업혁명으로 포장하며 변신한 포스트 자본제 시대2에는 중요한 역할은 AI가 하고 사람은 허드렛일만 할 거라고 우려합니다. 결국 승자는 AI 뒤에 숨은 자본일 겁니다.
자본은 인간을 필요 이상으로 노동하도록 강제합니다. 자본은 일하지 않은 자는 먹지도 말라는 노동윤리를 강요합니다. 철학자 김만권은 "열심히 일하지 않는 사람들을 열심히 일하게 만들기 위해 쓰였던 노동윤리는 빈자들을 부도덕한 인간으로 내몰아 우리의 도움이 필요 없는 존재로 만들기 위해 악용되고 있다"3며 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합니다.
인디언은 생활에 필요한 재화를 생산하는 것 이상으로 초과노동을 강제하지 않았답니다. 이를 두고 혹자는 인디언 부족사회가 생산력이 지극히 낮은 생계경제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효율이 높은 생산도구를 가져도 그들은 더 많이 생산하기보다 더 적게 노동하는 쪽을 선택했다4고 합니다. 토착 인디언은 유로아메리카인들에게 거의 절멸되었지만 인디언의 삶은 모든 노동의 종착지였습니다.
노동의 미래는 노동하지 않는 것입니다. 단요의 소설 《개의 설계사》를 보면 일하는 사람은 노는 사람을 기생충이라고 경멸하고, 노는 사람은 일하는 사람을 재수 없는 얼간이라고 비난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기본소득 시대에도 노동이 사라지지 않은 가까운 미래를 그리고 있습니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더 의미 있는 노동을 하며 생존 이상의 가치를 꿈꾸게 하는 것이 노동의 미래입니다. 더는 생존을 위해 노동하지 않는 것이 노동의 미래입니다.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버트런드 러셀은 "즐겁고 가치 있고 재미있는 활동들을 누구나 자유롭게 추구하는 세상을 만들자"5며 게으름을 찬양했습니다. 게으름을 넘어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상상력이 생깁니다만, 자본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를 착취합니다. 멍때리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삶은 여유로워집니다. 멍때리는 시간이야말로 삶을 채우는 시간6이니까요. 인간은 노동의 미래를 실현하며 서사적 일상을 보내는 정여름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자본제는 절대로 선해지지 않습니다. 개구리 겨드랑이에 털이 나길 기다리는 게 더 빠릅니다.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가 자본제를 피하는 길은 죽음뿐입니다. 역사는 노예제와 봉건제를 지나 자본제로 이어졌습니다. 자본제는 쉽게 소멸하지 않겠지만, 자본제 이후의 경제 형태를 진지하게 궁리할 때입니다. 불 꺼진 공장에서 돈을 벌어 보편적 기본소득(UBI)을 넘어 보편적 기본서비스(UBS)7 제공도 대안입니다..
자본제를 뒤집을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절실합니다. 좌파의 생각이 상식이 되고 진보의 전진이 혁명적8으로 담대해야 합니다. 모든 생명체는 멍때릴 권리와 일하지 않을 자유가 있습니다.
- 파리드 자카리아, 《팬데믹 다음 세상을 위한 텐 레슨》(민음사, 2021), 92쪽
- 절대다수인 노동자를 대표하는 노동주의가 아니라 소수 자본가를 대변하는 자본주의라는 말은 고상한 이념이나 사상이 아니라 노예제와 봉건제 이후에 나타난 새로운 경제적 착취 형태인 자본제로 부르는 것이 마땅함.
- 김만권, 《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괜찮아!》(여문책, 2018), 74쪽
- 최영철 외, 《국가를 생각하다》(북멘토, 2015), 147쪽 인용
- 버트런드 러셀, 《게으름에 대한 찬양》(사회평론, 2016), 258쪽
- 김경, 《묘씨맥주점》(송송책방, 2020), 85쪽
- 보편적 기본서비스(UBS, Universal Basic Services) : 주거, 교통, 통신, 관리, 운송, 인터넷 액세스 및 영양 공급과 같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여러 필수 서비스
- 혁명은 미래를 발명함으로써 과거를 구원하는 인간의 발명품으로 급진적 변화를 추구하는 반역을 통해 진보를 향해 돌진하는 집단적 행동으로 새로운 질서를 건설하려는 랜드마크다. 맑스주의 역사학자 엔초 트라베르소가 쓴 《혁명의 지성사》(뿌리와이파리, 2023)에 나오는 내용을 토대로 내 맘대로 편집한 혁명의 정의입니다.
- 이 글은 노동의 미래를 실현하는 정여름에게서 영감을 받아 자기표절 하며 짜집기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