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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ing posts with the label 사진記

텃밭본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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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로 초입에 있는 텃밭이다. 울타리까지 쳐놓고 깨를 키운다. 추수해도 한 됫박도 안 될 양이지만 손바닥만 한 자투리땅도 놀리지 않는다. 혹독한 시련을 헤치며 이어진 저력이 텃밭본능이다. 조선 여성 , 북한 녀자 , 한국 여성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텃밭본능이 강하다. 이악하고 억척스럽고 연약하지만 끊어지지 않는다. 비루한 세상은 여성이 구할 것이고, 맨 앞에 텃밭을 가꾸는 한국 여성이 있을 것이다.

나무가 나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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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이 달라도 어울려 사는 법을 배우고 싶습니다. 나무가 나무에게 간청하며 간곡히 한참 동안 기도했습니다. 나무는 나무를 닮고 싶습니다.

용수골에 가면 꽃양귀비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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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7회째인 용수골 꽃양귀비축제 (20240517~20240606)는 일만여 평 규모의 정원에 꽃양귀비, 금영화, 수레국화, 청보리 등 50여 종의 식물을 주민들이 직접 가꾸고 참여하는 주민자치형 지역축제입니다. 입장하며 초등생이 양귀비로 지은 삼행시를 찬찬히 읽으면 시나브로 미소가 번집니다. 깡통열차와 그네도 있습니다. 꽃말이 '망각, 휴식, 위안, 덧없는 사랑'인 꽃양귀비 Papaver Rhoeas 는 아편 양귀비 Papaver Somniferum 와 달리 관상용 개양귀비로 '우미인초(虞美人草)'라는 별명으로 불립니다. 당나라 양귀비(楊貴妃)는 아편 양귀비꽃에 이름을 남겼고 항우(項羽)만 사랑했던 초나라 우미인(虞美人)은 꽃양귀비에 이름을 남겼답니다. 금영화 California Poppy 는 북아메리카가 원산지로 꽃말은 '감미로움, 나의 사랑을 받아주세요'입니다. 수레국화 Centaurea Cyanus 는 독일의 나라꽃으로 꽃말은 '행복'입니다. 귀농한 예비역 대령(김용길 풍차꽃 농장 대표)이 2005년에 300여 평의 작은 밭에 관상용으로 심은 꽃양귀비가 입소문으로 관람객이 몰리자 2007년부터 마을 주민들이 합심해 지역축제로 만들었습니다. 매년 약 3만여 명 이상이 방문하여 축제를 즐긴답니다. 제발 꽃밭에 들어가지 말라고 애걸복걸하며 방송하는 이는 김정윤 이장으로 용수골 꽃양귀비축제추진위원장입니다. 주차관리부터 청소까지 남녀노소 모든 주민들이 참여하고 입장료(3000원/인)는 마을공동기금으로 활용한답니다. 꽃밭에 들어가서 사진을 찍어도 꽃보다 예쁘지 않으니 길 따라가며 양귀비를 감상하시기 바랍니다. 고개를 숙였던 백만송이 꽃양귀비는 이번 주말에 만개하여 꽃밭을 붉게 물들이며 장관을 이룰 겁니다. 해마다 이맘때 용수골에 가면 꽃양귀비가 있습니다.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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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이 땅에 꽂힌 사연은 딱 세 가지뿐 일을 안 해도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거나 아무리 일을 해도 먹고 살 걱정밖에 없거나 이도저도 아니라면 오월 햇살이 매섭게 따갑거나

K-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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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다 우연히 올려다본 나무에 벌써 단풍이 들었습니다. 성질 급한 K-단풍이라서 붉게 변했을까요, 아니면 우리가 무슨 잘못인지도 모르며 자연에 해코지하고 있을까요.

마지막 잎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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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구름이 잔뜩 낀 어느 날, 마지막 잎새를 보았습니다. 그날 밤에 비가 억수같이 내렸습니다. 새파랗게 젊은 자식을 잃은 부모가 통곡하듯이 쏟아졌습니다. 마지막 잎새의 안부가 걱정되면서 저 잎새마저 져버리면 띨빵 한 겨울이 올까 두려웠습니다. 그렇지만 누군가 허공에 잎새 하나를 그려놓으며 어떤 시련에도 희망을 이어주겠지요. 띨빵한 겨울을 지나 봄이 오면 잎새들이 두 배로 빼곡하길 빕니다.

응답하라 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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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자에게 알리는 말씀 전화의 요금은 말일까지 꼭 납부하여 주십시요. 전화기등을 소중히 관수하여 주십시요. 마음대로 전화기에 손을 대지 마십시요. 당국의 승낙없이 마음대로 전화기를 올메거나 떼거나 다른 기기등을 연결하여서는 안됩니다. 전화기는 다른 사람댁에 설치할 수 없읍니다. 전화기의 설치장소는 반드시 가입명의자의 주소 또는 영업소에 한 합니다. 따라서 다른 분에게 빌리는 전화는 설치할 수 없읍니다. 수화기를 내려놓은채 방치하지 마십시요. 수화기를 내려놓은 채 방치하시면 오는 전화가 걸려오지 못하고 교환업무에 지장을 주니 다른 사람과도 통화를 못하게 됩니다. ※ 위 3,4,5항을 어기시면 통화정지를 당하시거나 가입계약이 취소됩니다. 1974년 전화 가입자에게 알리는 말씀입니다. 교환원이 전화를 연결하던 시절이었죠. 집에 전화기 하나 놓기가 쉽지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꼭 지켜야 할 일을 읽어보면 재미있고 전화기가 귀한 대접을 받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당국'이나 '관수'라는 말에서 은연중에 공공기관의 위압감이 보이기도 합니다. 병신년 새해에 피식 웃으며 격세지감을 느끼기도 잠시입니다. 그 시절로 돌아가고 있으니까요.

굴뚝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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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구름이다. 유치원 꼬맹이들이 이구동성으로 한 말이다. 굴뚝으로 나오는 증기가 기온이 내려가면 보인다. 사정을 모르는 어른들은 공해라고 오해도 하지만 때 묻지 않은 눈에는 구름으로 보였나 보다. 그 순간 구름을 만드는 공장이 되었다. 공장 굴뚝에 오른 사람들이 있다. 스타케미칼 굴뚝과 쌍용자동차 굴뚝에 올랐다. 시인 송경동이 쓴 편지 를 읽으며 같이 분노한다. 모질게 너무나 모질게 희망을 만드는 공장을 본다.

까치야 울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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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반가운 소식 있으려나 오늘은 반가운 손님 오시려나 까치야 울어다오

외줄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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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외줄타기를 한 분도 계시는데 두 발로 걸으며 오 년을 못 버틸까요...

소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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疏外 혹은 소外...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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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 많이 잡혀요? 글쎄요. 안 잡히면 그만이죠, 뭐. 갈대가 죄다 쓰러져 있는 걸 보니 비가 많이 내렸었나 봐요? 추석 전에 엄청 내렸어요. 지금 개울은 그때 모습이 아니에요. 물이 참 맑은데 가재는 없나요? 많았는데 여름에 놀러 온 도회지 사람들이 죄다 잡아갔어요. 겨울 되면 다시 나타나요.

봄날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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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깊으면 봄날이 가깝다고 하여 오매불망 봄날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 불행히도 봄날은 코빼기도 안 보이고 갔다. 부채질할수록 과거지향적 부채(負債)만 늘어난다.

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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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는 벌건 대낮에 불을 밝히지는 않는다. 갈매기마저 나오지 않는 밤에 불을 밝힌다. 그런 사람이 한 번이라도 되고 싶다.

이심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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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석가는 제자들을 영산에 불러 모았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손가락으로 연꽃 한 송이를 집어 들고(拈華) 말없이 약간 비틀어 보였다. 제자들은 석가가 왜 그러는지 그 뜻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가섭만은 그 뜻을 깨닫고 빙긋이 웃었다. 가섭만이 '연꽃은 진흙 속에서 살지만 꽃이나 잎에는 진흙이 묻지 않듯이 불자(佛子) 역시 세속의 추함에 물들지 말고 오직 선을 행하라'는 뜻을 이해했던 것이다. 그제야 석가는 가섭에게 말했다. 나에게는 정법안장(正法眼藏:인간이 원래 갖추고 있는 마음의 묘덕)과 열반묘심(涅槃妙心:번뇌를 벗어나 진리에 도달한 마음), 실상무상(實相無相:불변의 진리), 미묘법문(微妙法門:진리를 아는 마음), 불립문자 교외별전(不立文字 敎外別傳:모두 언어나 경전에 의하지 않고 이심전심으로 전하는 오묘한 뜻)이 있다. 이것을 너에게 전해 주마. (출처 : 엠파스 한자사전) 팔만대중 중에 가섭만이 그 뜻을 알고 미소를 지었다고 합니다. 아침 점심을 같이 먹는다고 통하는 것은 아니지만 촛불이 타오르던 초심 같은 바이러스가 분명히 잠복하고 있어 슬며시 미소 지을 수 있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리라 믿습니다. 이심전심이 통하는 사람이 그립습니다.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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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내려가시나요? 고향은 늘 낮은 곳에 있어서 땀 흘리지 않고도 갈 수 있는 곳입니다. 더 높이 오르려고 아등바등하다 보니 낮은 곳에서 왔다는 걸 잊고 있었습니다. 아름드리 느티나무는 그림자를 느리우며 반겨주고 어느새 얕아진 냇가에는 소금쟁이들이 장난을 겁니다. 들판에는 고단한 여름을 이겨낸 낟알이 익어가고 볼품없는 장독대에는 어미의 맴이 담겨 있습니다. 쉼 없이 숨차게 오르던 짓을 잠시 멈추고 가진 것 없이 나눌 줄 아는 넉넉한 그 품에서 보름달을 바라보며 소원하는 바램만큼 딱 고만큼 아름 가득 정을 담아 오시기 바랍니다. 내 발자욱 소리를 기억하는 고향 가을을 쏘다니며 주섬주섬 담은 정만큼 올라가는 발걸음은 가볍답니다.

나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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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나발을 갖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힘껏 불고 싶었습니다. 어른이 된 지금 주둥이로만 나발을 불고 있습니다.

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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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계란이다. 한때 유행한 7080식 유머입니다. 메아리를 영어로 하면 마운틴틴틴틴 하는 식이였죠. "삶은 계란이나 오징어 있어요" 당시 기차를 타면 주전부리를 파시는 분이 승객들 사이로 외치던 말이죠. 얼마 전 KTX를 탈 기회가 있었는데 입석 손님도 없고 조용해서 사이다 마시고 삶은 계란을 까먹는 맛도 덜하더라고요. 계란을 가만히 보면 참 재미있어요. 한 손으로 계란을 움켜쥐고 힘을 주면 깨지지가 않습니다.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 하는 철학적 물음의 소재이기도 하고요. 콜럼버스의 달걀은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의 주인공도 되고요. 알을 깨고 나오는 데미안의 아픔이 혹 지금 살아가는 우리는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삶은 계란이라고 했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