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5 전쟁이 끝난 폐허에서 출발한 대한민국은 1960년 초 아시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습니다. 일본은 물론 북한에도 뒤지고 필리핀이나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국가보다도 가난했지요. 하지만 지난 60년간의 성장은 누가 봐도 눈부셨습니다. 흔히 '한강의 기적'이라고 이야기하지요. GDP는 421배 커졌고, 수출액과 정부 예산 규모는 1만 배 이상 늘어났습니다. GDP 규모는 이제 전 세계 10위 안에 들어가고, 1인당 소득(GNI)도 서유럽 국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입니다. 과학기술 투자액은 미국, 중국, 독일, 일본 다음인 세계 5위입니다. (14)
- 2019년 수출액은 1960년 대비 1만 6,950배에 달합니다. 무서운 증가세입니다. 그 결과, 한국의 수출액 순위는 중국, 미국, 독일, 일본, 네덜란드 다음인 6위입니다. 물론 수출이 느는 만큼 수입도 늘었지요. 2019년 기준 한국은 세계 9위의 수입국입니다. 수출과 수입을 합하면 전체 무역 규모는 1조 달러를 넘습니다. (17)
- 우리나라 2019년 연구개발 투자는 정부와 민간을 합쳐서 총 89조 471억 원(764억 달러)입니다. 이는 OECD 국가 중 세계 5위이며, 국내 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은 4.64%로 세계 2위입니다. GDP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은 2016년 이래 계속 세계 2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20)
- 2019년 기준 대한민국 국민의 1인당 GNI는 3,521만 원입니다. 세계은행 자료에 따르면 43,430달러로 전 세계 27위입니다. 일본, 이탈리아와 비슷하며 2017년 기준으로 OECD 평균의 95% 수준으로 2009년 89.1%에 비해 격차가 많이 줄었습니다. (...) 2021년 기준 한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 수준은 일본, 이탈리아, 뉴질랜드, 스페인과 비슷합니다. (23)
- 국민소득이 높아진 것은 나쁘지 않은 변화입니다. 하지만 선진국이라는 표현이 낙원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선진국이 되기 이전에도 우리 사회에 많은 구조적 문제가 있었습니다. 국민소득이 높아져도 이런 문제가 저절로 해소되진 않지요. 또 경제성장률이 정체되면서 이전의 누적된 문제가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31)
- 불평등의 정도가 다르다는 것은 제도와 정책에 의해 불평등의 속도 조절이 가능하다는 뜻이지만, 또 다르게는 현재의 체제를 유지하는 한 불평등이 심화되는 기조 자체는 변함이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세계적인 불평등의 심화와 선진국의 불평등 기조가 지속되는 모습이 그대로 우리나라에도 투영됩니다. (44)
- 대한민국은 선진국이라 불릴 정도로 경제가 성장했지만 그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 시민들의 경제적 여유는 그렇게 커지지 못했습니다. 이는 우리 사회의 불평등을 더욱 심화하는 하나의 요인이 됩니다.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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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위 1%는 근로소득도 높지만 이자와 배당, 임대소득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반면 하위 50%는 가장 비중이 큰 것이 근로소득입니다. 전체 근로소득의 20%를 가져가서 나누지요. 금융자산이 돈을 버는 것이 상위 1%, 그리고 상위 0.1%가 다른 계층보다 돈을 많이 버는 비결이었습니다. 돈이 돈을 버는 거지요. (69)
- 직접세와 사회보험, 공공복지 지출 모든 측면에서 불평등도가 개선되는 비율이 낮으니 양극화가 심해집니다. 1996년에서 2008년이 되면서 중산층은 줄고 상위층과 빈곤층이 늘어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그 결과, 1990년 상대적 빈곤율은 7.1%였는데 2010년에는 12.5%가 되었고 2019년에는 16.3%입니다. 노동 환경 또한 나빠져서 우리나라는 OECD 전체에서 저임금 노동자 비중이 25.1%로 가장 높습니다. OECD 평균은 16.1%입니다. (77)
- 지금의 대한민국은 OECD 회원국과 비교해 불평등이 심한 상태인 것은 분명합니다. 한국의 지니계수는 36개 회원국 중 28위이고, 상대적 빈곤율은 31위를, 소득 5분위 배율은 29위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모두 OECD 내에서 밑바닥을 기는 중입니다. (84)
- 노동으로 보면 우리나라는 0.5~1%의 상위 계층, 그 아래 15%의 중상위층, 그리고 다시 55%를 차지하는 중간층, 마지막으로 30%를 차지하는 하층으로 나뉠 수 있습니다. 55%의 중간층은 언제라도 아래 30%로 떨어질 위험이 상존하는 계층입니다. (106)
- 애초에 정규직화하기 힘든 노동 영역을 위해 존재하던 비정규직은 이렇게 정규직을 축소하고 기업의 노동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노무관리의 효율성을 높이고, 인건비를 줄이려는 방편이 되었습니다. 이런 방식이 가능했던 것은 먼저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노동유연화가 도입되어서입니다. 기업이 사람을 쓰고 버리는 걸 아주 쉽게 만든 것입니다. (...) 물론 1980년대 고도성장 시기와 21세기 우리나라 산업 구조가 바뀌면서 노동시장이 변화한 것도 사실이지만 우리나라처럼 선진국 중에선 비교적 실업률이 낮은 나라에서 양질의 일자리는 줄어들고 비정규직이 늘어난 건 분명히 정책적 실패이기도 합니다. (125)
- 플랫폼 노동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이들 중 꽤 많은 이들이 종속적으로 일을 하고 있는데 일반적인 임금 노동자와 다른 지위에 있는 것입니다. 흔히 플랫폼 기업들은 자신들이 노동을 '중개'할 따름이라고 합니다. 자신들에게는 사용자로서의 책임이 없다고 하지요. 배달 플랫폼, 대리운전 플랫폼, 가사서비스 플랫폼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이들 플랫폼 운영 기업은 디지털 기술을 이용하여 이들 노동자의 노동과정을 감시하고, 각종 방식으로 노동을 통제합니다. (...) 플랫폼 노동과 관련하여 핵심은 누군가는 노동을 하고, 누군가는 그 과정을 통제한다는 것입니다. 그 형식의 다름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136)
- 한국산업안전공단이 2001년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만인율은 3.09명입니다. 정규직은 0.29명이고요. 비정규직의 사망률이 정규직의 10배가 넘습니다. (149)
- 대한민국의 청년들은 네 부류로 나뉩니다. 부모의 자산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풍족한 삶을 누릴 수 있고, 더불어 일정한 사회적 지위를 얻는 것이 아주 손쉬운 상위 0.5%~1%, 부모의 뒷받침 아래 자신의 노력과 재능을 합해서 상위 10%의 안정적인 소득과 사회적 지위가 보장되는 트랙을 타게 된 10~15%, 인생을 살아갈 기본 토대는 마련한 40%, 그리고 사회에 나오면서, 아니 그전부터 많은 걸 포기하고 힘든 삶을 살아가야 하는 걸 아는 나머지 부류입니다. 이 구분은 그들의 부모가 가진 자산과 소득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지금의 한국 사회를 세습 중산층 사회라고도 하지요. (163)
- 서울대 대학생활문화원이 2012년 입학생 2,14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월평균 가게 소득이 500만 원 이상인 고소득층 가구에 속한 신입생이 47.1%였습니다. 그리고 부자들이 많이 산다는 강남 3구 출신 신입생도 전체 합격생의 17.7%였죠. (...) 그리고 통계청에 따르면 강남 3구 일반계 고교 사교육비(월 56만 8,000원)는 전국 최고 수준이었으며, 읍면 지역의 5배가 넘었습니다. (175)
- 시간이 지날수록 부모 소득에 따른 학력 불평등은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2018년 의대 신입생 중 55%의 부모 연 소득은 1억 이상이었습니다. 2020년에는 그 비중이 80.6%에 달하고 있습니다. (189)
- 남녀 차별에 눈을 감고, 페미니스트를 혐오하는 이들은 아직 여성의 경력단절 문제가 눈에 띄기 전인 20대에, 20%에 남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남성들 가운데서 가장 많이 보이게 됩니다. (230)
- 2017년 우리나라 가구 유형은 부부+자녀 가구가 615만 가구, 31.4%로 가장 많습니다. 그다음이 1인 가구로 558만 3,000가구, 28.5%이고, 부부 가구가 309만 3,000가구로 15.8%입니다. 한부모 가구는 10.2%입니다. 3세대 이상이 같이 사는 전통적 형태의 가구는 95만 1,000가구로 전체의 4.9%밖에 되질 않습니다. (250)
- 노인 자살률은 나이가 들수록 높아집니다. 65세에서 70세와 70~80세 그리고 80세 이상의 연령층을 비교해보면 연령이 높아짐에 따라 자살률이 급속히 높아짐을 알 수 있습니다. 비교적 젊은 노인들은 어떻게든 노동을 통해 필요한 소득을 확보할 수 있지만 그마저도 힘든 노인들은 자살로 내몰리는 것이죠. 그리고 남성보다 여성의 자살률이 더 높습니다. 0~65세 사이의 인구에서는 남성 자살률이 더 높은 것과 정반대의 현상입니다. 여성 노인들이 더 가난하다는 증거죠. 이제 더는 삶의 질을 높일 방법이 없는 노인들은 남은 생을 허덕이며 살기보다 죽기를 택합니다. (...) 사실 이건 사회적 타살이지요. (270)
- 우리나라 노령층의 상대적 빈곤율은 44.0%로 OECD 전체에서 가장 높은 수준입니다. 다른 나라 노인 빈곤율은 미국을 제외하고 모두 20%를 넘지 않습니다. 미국조차 23.1%입니다. (275)
- 중위연령이란 해당 지역의 전체 인구를 연령 순서로 나열할 때, 한가운데 있는 사람 연령입니다. 우리나라 전체 2017년 중위연령은 42.0세인데 2047년에는 56.8세가 됩니다. (303)
- 흔히들 이주 노동자를 보면서 우리나라에 와서 돈 벌어 간다거나 우리가 먹여 살린다고 이야기하는 예가 왕왕 있는데 실제로는 그 반대입니다. 그들이 취약한 사회 안정망의 가장자리에 살면서 최저임금 수준의 월급을 받으면서 장시간 노동으로 우리를 먹여 살리고 있는 겁니다. (356)
- 10대의 장애인 비율은 1.1%로 백 명당 한 명입니다. 그러나 40대가 되면 3.1%로 3배가 늘고 60대가 되면 10%로 열 명 중 한 명이 장애가 있습니다. 즉 장애는 대부분 후천적입니다. (360)
- 세상에 장애인에 적합한 직무라는 표현이 말이나 되는 이야기일까요? 반대로 장애인에게 부적합한 직무가 무엇인지를 묻고 싶어집니다. 그리고 아주 조금만 신경 쓰고 여건을 만들면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일할 수 있는데 그런 여건을 만드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표현이라고밖에는 생각할 수가 없지요. (370)
- 장애 출현율이라는 통계가 있습니다. 장애 출현율이란 장애인 수가 전체 인국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장애 출현율이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 가장 작은 편에 속합니다. (...) OECD 평균은 15.2%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5.39%에 불과합니다. (...) 이렇게 낮은 이유는 장애 판정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376)
-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가 남녀 소득 격차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는 여성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출산율이 다른 선진국보다 훨씬 가파르게 낮아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389)
- 모자 가구는 7.3%입니다. 전체 한부모 가구는 2019년 전체 가구의 10.9%를 차지하는데 그중 여성 한부모 가구가 74.9%로 전체의 4분의 3에 이릅니다. (399)
- 여성 가구주 중에서 특히 우리가 살펴봐야 할 것은 고령 여성 가구와 모자 가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성 가구주 평균 노동소득이 130만 원이 되질 않는데, 그중에서도 경력단절 여성이 가구주인 모자 가정과 노동 능력이 취약한 고령 여성 가구의 경우, 상대적 저임금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고 노동소득이 여성 가구주 평균보다 낮은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409)
- 소득에서의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최저임금을 올리고, 비정규직의 노동권을 확실하게 보호하고, 노동 시간을 줄여야 합니다. 정부의 소득 재분배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소득세 등 직접세 세율을 더 올리고 공공복지 예산을 늘려야죠. 부의 세습을 막기 위해 상속세와 증여세의 세율을 올리고 면제 범위를 축소하면 됩니다. 불평등이 줄어들면 교육 문제의 기본이 해결됩니다. 소득 격차가 적어지면 기를 쓰고 명문대를 갈 이유가 줄어들고 자연스레 사교육도 감소합니다. 부모의 소득 중 교육비로 빠져나가는 비용이 주니 그 또한 좋은 일입니다. 소득 격차가 줄고 국가의 소득 재분배가 더 활발해지면 중산층이 넓어지고 여유가 생깁니다. 그러면 자연스레 출산율도 높아지고, 지방 소멸도 더뎌지겠지요. (458)
불평등한 선진국/박재용/북루덴스 20220110 464쪽 18,000
대한민국이 불평등한 선진국이 된 이유를 통계를 들여다보며 조목조목 설명하고 있습니다. 지루하고 외면하는 통계로 노동, 청년, 가족, 노인, 지방 소멸과 소수자에 관하여 알기 쉽게 풀어줍니다. 선진국이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행복하지 않고 힘들고 불안한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가난은 나의 책임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불평등은 나의 문제가 아니다." 불평등한 선진국을 극복할 현명한 시민들의 연대가 절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