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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유교걸 - 어느 페미니스트의 동양 고전 덕질기

어쩌다 유교걸 - 어느 페미니스트의 동양 고전 덕질기
공자 왈 맹자 왈을 공부하는 학생이 있습니다. '보수적인 여자가 아니라 유교를 공부하는 여자, 노브라로 앞가슴이 훤히 트인 티셔츠를 입고 《논어》를 들고 다니는 여자, 또래 친구들이 스토킹 범죄로 스러져가는 걸 보고 분노하면서 음양을 공부하는 여자, 고리타분한 건 딱 질색이라면서 고전 텍스트를 읽는 여자, 세상이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예(禮)에 대해 말하는 여자(8)'입니다. 스스로 '유교걸'이라고 합니다. '유교 같은 것에 진절머리 내던 페미니스트가 페미니스트인 유교걸이 되기까지 20대 중 절반의 시간이 필요(22)'했습니다. 저자는 대학을 그만두고 인문학 공동체 문탁네트워크에서 유교를 공부합니다.

《열녀전》이 열녀문 얘기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닙니다. '열전(列傳)'과 같이 어떤 이야기가 줄지어 있다는 뜻의 '열(列)' 자를 쓰는 《열녀전》은 '옛 여성 이야기 모음집'이라는 걸 지금 알았습니다. 저자는 '《열녀전》을 읽으며 나의 페미니스트 자아와 유교 자아가 경계를 풀고 화해할 수도 있겠다는 느낌(43)'이 들었다고 합니다. 공부할수록 夫婦有別 長幼有序(부부 사이에는 구별이 있어야 하고, 어른과 아이 사이에는 차례가 있어야 한다.)처럼 불편했던 문장들을 새롭게 해석합니다. 여성혐오와 차별이 아니라 '유교의 '구별'과 '차례'는 서로가 서로의 가능성을 믿고 의지하면서, 각자 다른 역할을 수행해갈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의미(67)'하며 유교야말로 인간의 가능성을 믿는 학파라는 믿음이 강해졌습니다.

  • 어려서부터 계절을 즐길 줄 아는 인간이었다면 나는 아마 비구니가 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청소년 시절 내내 나는 대통령이나 변호사를 꿈꾸는 진취적인 여자였다. 사주상 나의 캐릭터는 갑목(甲木)이라던데, 이것이 나의 타고난 성정을 잘 표현해준다고 생각한다. 갑목은 큰 느티나무와 같아서 성장하는 힘이 강하고 위로 뻗어나가는 성향이 있다. 그런 내게 비구니 감성이 생긴 건 문탁네트워크 생활을 하면서부터였다. 내가 문탁네트워크에서 보낸 시간은 대단한 업적을 세우거나 앞으로 계속 나아가려는 움직임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곳에서 나는 내 옆 사람부터 저 멀리에 있는 누군가에게 이르기까지, 작은 어려움부터 큰 고난에 이르기까지 꼭꼭 씹어 소화하는 법을 배웠다. 무작정 앞서나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에 집중하고, 그것에 만족하며 나름의 행복을 찾아내는 법도 배웠다. 그러니까 이 시간은 나를 내세우기보단 내게 다가오는 것들을 받아들이는 시간이었다. (121)

공부를 계속할수록 선생님들에게서 '공부에 대한 태도와 세상을 대하는 마음가짐, 공동체를 돌보는 성실함 같은 것(60)'을 배웠습니다. '자기 능력을 믿게 하려면 그 사람이 축적해온 결과물의 양이 아니라 그 사람이 조금씩 달라지는 방향에 집중(63)'해야 하는 것도 깨우쳤습니다. '이미 품고 있는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의지가 필요하고, 그 의지를 끌어내줄 사람(66)'이 선생의 역할임을 알았습니다. '공자에게 계발이란 출세를 위한 것도, 명예나 재산을 위한 것'이 아니라 '뜻은 있지만 자기 안에 갇혀 어쩔 줄 모르는 마음이 세상으로 뻗어나갈 수 있도록, 혼자서 안달복달하던 마음이 세상과 만나며 감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129)'이라서 오직 관계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 나의 한문 스승님은 몇십 년 동안 《논어》를 수도 없이 보셨을 텐데도 《논어》가 "읽어도 모르는 게 계속 나오는 책", "읽어도 읽어도 새로 읽히는 책"이라고 하셨다. 이 책은 오늘날 보기에 언어가 분명하지 않고 모호해 보인다. 그러나 분명하지 않고 모호한 동시에 그 뿌리가 깊고 의미 있는 말은 누가 언제 어떤 상황에서 읽느냐에 따라 다르게 다가올 수 있다. 예전에 읽었을 때 심금을 울렸던 말이 다른 날엔 별 볼 일 없게 느껴질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다. 그야말로 살아 있는 책인 셈이다. (123)
  • 어쩌면 음양으로 세계가 구성되어 있다는 말은 세계란 것이 이질적인 성질들이 관계 맺는 곳, 즉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곳이라는 의미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음양에 특정한 가치가 부여되고 있는 것은 음양이 나쁜 개념이라는 증거가 아니라, 거꾸로 이 사회를 이해하는 지표가 될 수도 있다. 오늘날은 어둠을 지우고 밝음으로만 향하는 사회, 소멸을 두려워하고 성장만을 외치는 사회, 약한 것을 무용하다 여기고 강한 것만을 최고로 치는 사회, 음양의 중심이 무너지고 양의 방향으로 기운 사회가 아닐까? (158)

저자는 공자를 '세상과 연결되어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했던 철학자이자 자신의 현장에서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했던 활동가'라고 합니다. 고리타분한 공자가 '오늘날 연결의 문제를 고민하는 우리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170)'고 생각합니다. 《논어》는 '의례를 살피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과정 그 자체가 우리가 서로를 존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낯선 이들과 함께 살아가보자고 손을 내미는 행위(197)'로 여전히 살아 있는 책입니다. 이 세상 존재들과 관계가 지속되는 한 저자는 계속 학생입니다. 영원한 유교걸입니다.

어쩌다 유교걸/김고은/오월의봄 20231010 214쪽 13,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