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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라더니 '영웅'이라더니 - 의료현장의 민낯을 증언하다

'덕분에'라더니 '영웅'이라더니 - 의료현장의 민낯을 증언하다
  • 간호부는 의사 아이디를 쓰지 말라고 얘기하지만, 현장에서는 처방이 없으면 업무가 돌아갈 수가 없다. 간호 업무만 하는 것도 벅찬데 의사 업무까지 더해져서 해결이 안 되면 다음 근무 간호사에게 업무가 전가된다. 생리식염수 처방하는 일이 하찮아서 바쁜 의사들은 그런 일은 하지 않는다는 잘못된 인식을 고치기 위해서는 의사를 더 많이 뽑아서 의사 업무 부담을 줄여 주고, 간호사 업무 범위를 명확하게 해야 한다. (26)
  • 병동 교대근무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너무 많은 환자를 보는 것이다. 다행히 요즘 노동조합에서 근무조당 환자 숫자를 선진국 수준으로 간호사 1명이 환자 5명을 간호할 수 있도록 한다고 한다. 사실 병동에서 10명 이상의 환자를 보다가 주말에 환자 퇴원으로 한 자릿수로만 줄어도 숨통이 트인다. 정말이지 근무조당 환자 수를 1대 5로 낮추는 것은 반드시 되어야 한다. 이전에 미국 샌프란시스코 간호사노조를 방문해서 만난, 1대 5 근무를 하는 한인 간호사들의 행복한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근무 시간 중 가장 많이 하는 일이 환자와 대화하는 것이라고 했다. 우린 환자에게 친절한 설명은커녕 환자와 눈도 마주칠 시간이 없는데. 하루빨리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 (41)
  • 나는 병동에서 일하는 10년 차 간호사다. "오늘 점심 메뉴는 무엇일까?" 하며 기대하는 일반 직장인들과는 달리 "오늘은 과연 점심을 먹을 수 있을까?" 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한 달 20일 근무 중 5번 점심을 먹으면 성공한 달이다. 그나마 나의 점심시간을 줄여야 시간에 맞춰 간호를 제공할 수 있다. (49)
  • 우리는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지키며 아플 수 있을 권리가 있고 가족에게 부담 주지 않을 권리가 있고 마음 편히 치료받을 권리가 있다. 간병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 가족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나라에서 책임지고 풀어야 할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고 해결해야 한다. 나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당신도 품위 있게 아프려면 말이다. (64)
  • 그렇다. 사람이 나빠서 태움이 발생하는 게 아니다. 지독한 인력 부족 환경에서 여러 명의 몫을 해내야 하는 간호사의 업무환경 때문이다. 생쥐도 열악한 환경에 모아 놓으면 죽을 때까지 서로 싸우는데 하물며 감정이 있는 사람은 오죽할까. 인력 부족으로 서로를 헐뜯으며 태움이 만들어지고 눈물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건 지금도 어느 병원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인지도 모른다. (68)
  • 의료인력 부족은 간호사 식사에도 영향을 준다. 간호사는 식사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틈틈이 짬이 날 때 입에 쑤셔 넣다시피 밥을 먹고 다시 근무지로 돌아와야 하는 게 일상이다. 이러한 원인도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인력이 충분하다면 서로 교대하면서 식사를 할 수 있지만 현실은 자기 자신을 챙기기에도 힘든 상황이다. (...) 가장 가까이에서 환자를 지키지만, 자신은 지킬 수 없는 보건의료 노동자. 이제는 더 이상 동료를 잃고 싶지 않고 끼니를 거르고 싶지도 않다. 우리가 지금까지 흘린 눈물이 의료현장을 개선하는 밑거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70)
  • 법조차 우리 편이 아니다. 의사와 간호조무사가 힘을 합쳐 간호법을 반대한다고 한다. 간호법 제정을 위해 간호사들이 힘을 합쳐 목소리를 내면 사람들은 '공부 더 열심히 해서 의사 되지 그랬냐'고 한다. 우리는 의사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우리가 목소리를 내는 것은 일하면서 안전을 보장받고 환자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다. 잘되면 의사 덕, 잘못되면 간호사 탓인 이런 일을 누가 하고 싶겠는가? (80)
  • Q: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무엇인가요?
    A: "의사 선생님은 언제 오시나요?" 입니다.
    Q: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불만은 무엇인가요?
    A: "비싼 돈 내고 검사만 하고 설명은 하나도 못 들었어요."입니다. (82)
  • 나는 가끔 이런 말을 주위 사람들에게 한다. "환자가 내 영혼을 가져가서 환자는 좋아지고 나는 영혼이 빨린 것처럼 힘들다." (130)
  • 거동이 불가능한 환자의 간병비는 12만 원에서 시작하지만, 조건에 따라 살이 붙으면서 그 금액은 15만 원 전후까지 바뀐다. 정해진 금액에 간병인이 고용되는 것이 아니라 간병인이 직접 환자를 보고 상황에 따라 추가 금액을 요구하고 합의되어야 간병을 시작한다. 하루 15만 원, 한 달 450만 원(30일 기준)이고 6개월이면 2천700만 원이다. 우리나라 근로자 월평균 임금이 352만 원(2022년 기준)이니 월 450만 원을 감당할 수 있는 환자가 몇이나 될까? (167)
  • 청소·이송·배식·간호업무까지 한 명의 간호사에게 주어진 업무 부담이 늘어나면서 생긴 허리·손목 통증과 근골격계 질환까지, 길어진 전염병은 우리 몸과 마음 전부를 병들게 했다. (183)
  • 코로나 위기 속에서 환자를 생각하고 그들의 회복을 염려했던 마음은 육체노동자들 역시 다르지 않다. 식당에도, 화장실에도, 폐기물 창고에도, 세탁실에도 보이지 않는 모든 곳에 보건의료 노동자들이 있었다. 단 한 끼라도 환자 식사가 제공되지 않는다면, 단 하루라도 청소 노동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병원은 큰 혼란을 겪을 것이다. 이는 우리가 하찮게 여기는 이 노동들이 병원과 사회의 필수 노동임을 증명하는 셈이다. 겉으로는 배제와 차별을 드러내지 않는 척하지만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위계를 돈과 수당으로 증명하는 사회. 모든 노동자의 노동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은 없다. 금전을 떠나서, 우리 노동이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참 많이 속상했다. (190)

'덕분에'라더니 '영웅'이라더니/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매일노동뉴스 20230706 192쪽 18,000원

간호사가 의사가 할 일을 대신 하면 불법입니다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에는 정작 거동이 불편한 중증 환자는 입원할 수 없고, 간호조무사 1인은 30여 명의 환자를 담당합니다. 한 달 간병비는 노동자 평균 임금보다 더 많습니다. 지독한 인력 부족으로 태움이 발생합니다. 코로나로 인한 폐쇄 병동에서는 간호사가 청소·이송·배식·간호업무까지 했고, 보건의료 노동자들은 격무에 시달렸습니다.

의사, 간호사, 간호조무사 등 보건의료 노동자를 늘려야 합니다. 간병비 때문에 치료를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공공의료를 강화하고 보건의료 인력을 늘려야 합니다. 코로나19가 창궐할 때는 '덕분에'라며 '영웅'이라며 추켜세우더니 지금은 다시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갔습니다. 보건의료 노동자들이 환자들을 떠나기 전에 얼른 개선합시다. 특히 사람을 갈아 넣는 공공의료는 멈춥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