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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수업 - 따로 또 같이 살기를 배우다

Das geheime Leben der Baume, 2015
  • 왜 나무들은 사회적 존재가 되었을까? 왜 자신의 영양분을 다른 동료들과, 나아가 적이 될 수도 있는 다른 개체들과 나누는 것일까? 이유는 인간 사회와 똑같다. 함께하면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나무 한 그루는 숲이 아니기에 그 지역만의 일정한 기후를 조성할 수 없고 비와 바람에 대책 없이 휘둘려야 한다. 하지만 함께하면 많은 나무가 모여 생태계를 형성할 수 있고 더위와 추위를 막으며 상당량의 물을 저장할 수 있고 습기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런 환경이 유지되어야 나무들이 안전하게, 오래오래 살 수 있다. 그런데 그러자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공동체를 유지해야 한다. 모든 개체가 자신만 생각한다면 고목이 될 때까지 수명을 유지할 수 있는 나무가 몇 그루 안 될 것이다. 계속해서 옆에 살던 이웃이 죽어 나갈 것이고 숲에는 구멍이 뻥뻥 뚫릴 것이며 그 구멍을 통해 폭풍이 숲으로 밀고 들어와 다시 나무들을 쓰러뜨릴 것이다. 또 여름의 더위가 숲 바닥까지 침투하여 숲을 말려 죽일 것이다. 그럼 모두가 고통을 당할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나무는 한 그루 한 그루 전부가 최대한 오래 살아남아 주어야 하는 소중한 공동체의 자산이다. (14)
  • 나무들은 서로 협력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 무턱대고 바람만 믿을 수는 없다. (...) 뿌리를 이용하는 쪽이 훨씬 더 확실하다. 뿌리는 모든 개체들끼리 서로 연결되어 있고, 또 날씨와 관계없이 제 기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 나무의 뿌리는 아주 멀리까지 뻗어 있다. 수관(樹冠) 너비의 두 배까지 뻗어 나간다고 한다. 그러므로 지하에선 서로의 뿌리가 겹치게 되고, 그렇게 뒤엉켜 자라면서 상호 협력을 하는 것이다. (22)
  • 아헨 공과대학의 바네사 부르셰(Vanessa Bursche)는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너도밤나무 숲에서 광합성과 관련하여 매우 특별한 사실을 발견하였다. 모든 나무가 동일한 성과를 올리도록 나무들이 서로서로 보폭을 맞추는 것이다. (29)
  • 모든 나무는 통계적으로 볼 때 정확히 한 그루의 자손을 키운다. 그리고 언젠가 그 자손에게 자신의 자리를 물려줄 것이다. 숫자가 그보다 많을 경우 씨앗이 발아는 할 수 있지만 몇 년 동안, 심지어 몇십 년 동안 엄마의 그늘에서 겨우겨우 목숨만 부지하다가 결국 삶을 마감하고 말 것이다. (47)
  • 물이 부족하면 나무는 비명을 지른다. 물론 숲에서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우리 귀에는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나무의 비명은 초음파 영역에서 일어나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70)
  • 독일에는 주로 너도밤나무 숲이 많다. 그런데 이 나무는 빛을 거의 땅으로 보내지 않는다. 바로 그 점에 착안하여 생존 전략을 짠 나무가 주목이다. 주목은 절제와 인내의 상징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너도밤나무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주목은 숲의 아래층을 노렸다. 이곳에서 너도밤나무가 잎 틈으로 내려보내 주는 3퍼센트의 남은 빛을 이용해 살아간다. (...) 주목은 대부분의 덩치 큰 경쟁자들을 이기고 1000년 이상 살아남는다. (105)
  • 뿌리가 왜 더 중요한 부위인가 하는 문제로 돌아가 보자. 아마 나무의 두뇌에 해당하는 것이 그곳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 뿌리는 물질을 흡수하여 그것을 전달하며 광합성 생산물을 균류 파트너에게로 인도하고 심지어 이웃 나무들에게 경고성 물질을 전달한다. 그렇긴 하지만 과연 두뇌라는 말까지 써도 되는 것일까? 두뇌라고 부르려면 신경 과정이 필요하고 전달 물질 이외에도 전류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바로 그 전류를 측정할 수가 있다. 이미 19세기부터 측정해 왔다. (112)
  • 학자들이 전 세계에서 약 70만 그루의 나무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는 실로 놀랍기 그지없다. 수령이 오래된 나무일수록 성장 속도가 더 빨랐으니 말이다. 줄기의 직경이 1미터인 나무는 그 절반인 나무에 비해 세 배의 생물량을 생산하였다. (...) 노인 나무는 청년 나무보다 생산력이 더 높고, 기후 변화에 대적할 인간의 중요한 연합군이다. 활력을 위해 숲을 젊게 만들자는 구호는 틀렸다. (130)
  • 활엽수가 지구에 등장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1억 년 전이다. 침엽수의 등장 시점은 그보다 이른 1억 7000만 년 전이었으니까 활엽수가 상대적으로 더 현대적인 진화의 결과물이다. (179)
  • 1월이나 2월에 갑자기 며칠 동안 날씨가 푸근한 날이 있다. 그래도 너도밤나무와 참나무는 싹을 틔우지 않는다. 아직 때가 아니라는 것을 나무들은 어떻게 아는 것일까? 적어도 유실수들의 행동 방식에 대해선 조금이나마 궁금증이 풀렸다. 유실수들이 숫자를 셀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유실수들은 따뜻한 날이 일정한 숫자를 넘겨야 상황을 믿고 봄이 왔다는 확신을 품는다. 며칠 따뜻한 것으로는 아직 봄이라고 단정 지을 수가 없는 것이다. (189)
  • 큰 활엽수 중에서 어떤 형태로건 모양을 다듬거나 톱으로 베거나 이리저리 손을 대지 않은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런 톱질(사실은 학살이다)은 오직 사람이 보기 좋으라고 한 짓이다. (...) 수관을 자르면 뿌리도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 뿌리는 지상의 수관에 맞추어 최적의 크기를 확보한다. 그런데 갑자기 대부분의 가지를 잘라 내서 광합성을 못하게 되면 지하의 뿌리 중 상당수가 양분을 얻지 못해 굶어 죽는다. (220)
  • 숲의 공기는 실제로 청정하다. 숲이 거대한 여과 장치의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나뭇잎은 항상 기류 속에 서 있기 때문에 떠다니는 입자들을 낚아챈다. 그 양이 연간 제곱미터당 최고 7000톤에 이른다. (273)
  • 우리가 식물을 이해하기 힘든 이유는 또 있다. 나무는 정말 너무너무 느리다. (...) 하지만 알고 보면 껍질 밑에서 일어나는 몇 가지 일들은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 예를 들어 물과 양분, 즉 '나무의 혈액'은 뿌리에서 잎까지 초당 최고 1센티미터의 속력으로 쉭쉭 올라간다. (284)
  • 실제 나무가 많으면 물고기와 굴의 어획량이 늘어난다. 하지만 우리가 나무를 잘 돌봐야 하는 이유는 이런 물질적 이익만이 아니다. 보존할 가치가 있는 작은 수수께끼와 기적도 중요한 이유다. 잎의 지붕 밑에서는 매일 감동적인 드라마와 러브스토리가 펼쳐진다. 숲은 우리 집 대문 앞에 남은 마지막 자연이다. (298)

나무 수업Das geheime Leben der Baume, 2015/페터 볼레벤Peter Wohlleben/장혜경 역/이마 20160310 308쪽 13,500원

서로 맞닿은 나뭇가지들은 왜 그 이상 뻗어나가지 않을까. 나무는 어떻게 자기방어를 할까. 나무는 이타적이고 협동적일까. 나무는 어떻게 꼭대기에 있는 잎사귀까지 물을 올릴까. 나무도 지능이 있을까. 나무는 어떻게 활엽수와 침엽수로 진화했을까. 나무는 왜 낙엽을 만들까. 나무는 계절의 변화를 어떻게 알까. 나무도 숫자를 셀까. 나무도 잠을 잘까. 숲에도 에티켓이 있을까. 숲에 가면 왜 기분이 좋아질까.

나무에 관해 알려지지 않았거나 궁금했던 거의 모든 것을 재미있게 알려줍니다. 인간이 생물을 동물과 식물로 구분하는 행위가 터무니없고, 나무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인간은 나무가 꼭대기까지 어떻게 물을 올리는지 아직 모릅니다. 나무는 인간처럼 이기적이지 않고, 뿌리까지 지독한 좌파라는 걸 알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