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세계적으로 대유행하면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취약성이 극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가난한 사람들과 일자리가 불안정한 사람,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어떤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지 탄로 났다. 저임금을 받고 일하는 "필수 노동자들"이 없으면 우리 사회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다는 사실은 인간의 상호의존 관계를 뚜렷하게 드러냈다. 우리는 은행가와 변호사가 없어도 생존할 수 있지만, 식료품 상인과 간호사, 치안 인력은 우리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코로나바이러스의 대유행은 생존 문제는 물론, 책임감 있는 시민으로 살아가는 일에서도 상호협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드러냈다.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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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구성하는 방식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접하는 기회의 성격과 그들의 인생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것은 물질적 조건뿐 아니라 행복, 대인관계, 인생의 전망까지 결정한다. 사회구조는 정치, 법률, 경제처럼 가정과 공동체의 생활을 조직하는 여러 제도에 의해서 결정된다. 모든 사회는 어떤 일을 사적인 영역에 두고 어떤 일을 공적인 영역에 둘지를 선택한다. 이렇게 사회제도가 작동하는 방식을 규정하는 규범과 법규를 나는 사회계약이라고 부른다. 사회계약은 우리가 살아갈 인생의 성격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사회계약은 너무도 중요하고, 또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신들이 속한 사회를 쉽게 떠나지 못한다는 점에서 대다수의 동의를 필요로 한다. 또한 환경이 달라지면 주기적으로 사회계약을 둘러싼 재협상이 이루어져야 한다.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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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사회계약과 복지국가의 개념을 혼동하지만, 이 두 개념은 동의어가 아니다. 사회에 무엇을 제공할 것이며, 누가 그것을 제공하는지를 규정하는 개념이 사회계약이라면, 복지국가는 사회에 그것을 제공하는 여러 가능한 수단들 가운데 하나이다.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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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차별 없는 노동시장을 조성하여 여성들이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면 여성과 남성 모두의 생산성이 향상될 것이다. 이때 우리가 경제적으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은 매우 크다. 노동시장에서 성차별을 해소하고 여성의 기술력을 더한다면 GDP를 35퍼센트까지 증가시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러한 경제적 이익을 얻고자 한다면 보육 지원과 연관된 사회계약을 개선할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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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연구는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 오스트레일리아, 유럽, 아시아, 중동을 비롯한 29개국에서 10만5,000명의 어린이를 성인이 될 때까지 추적조사했다. 그 결과, 직장을 다니는 여성의 슬하에서 자란 딸들은 전업주부에게 양육된 딸들보다 취업 및 승진 가능성이 더 크고, 더 오래 직장생활을 하며 더 높은 소득을 올린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한편 직장생활을 하는 여성 밑에서 자란 아들은 성인이 되어서 가족을 돌보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을 쏟았고, 딸들은 성인이 되어서 무급 가사노동에 더 적은 시간을 썼다. 이러한 차이는 직장 여성이 집안에서 유급 노동과 무급 노동을 분담하는 일에서 훨씬 평등한 태도를 보여주기 때문으로 보인다.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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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장에서 여성의 재능을 활용하면 재정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생후 1년이 지난 시점부터는 아이의 복지 향상에도 유익하다. 또 생후 초기에 아빠가 양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아이에게 이롭다는 사실도 입증되었다. 사회계약에서 양성 간에 육아의 책임을 균형 있게 분담하고, 여성이 무급 노동에서 벗어나 유급 노동에 참여하게 할 때 사회는 더욱 풍요롭고 공정해진다. 아이들이 생후 초기에 부모와 교감하고, 이후 양질의 보육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면 학업 및 정서 발달이 촉진된다. 빈곤층에 속한 아이들일수록 정부의 보육 지원이 중요하며, 보육의 질을 높일 때 아이들의 사회 이동social mobility 가능성도 향상될 것이다.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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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계약은 현대 사회의 가족과 경제적 필요를 충족해야 한다. 보육 지원을 확대해서 더 많은 여성이 노동시장에서 재능을 펼친다면 생산성이 올라가고 세수가 증가해 보육 정책을 실행하는 데에 드는 비용쯤은 얼마든지 충당하고도 남는다. 아빠들이 더 많이 육아에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것도 아이들의 복지를 증대하고 인지 발달을 촉진해 생산성이 뛰어난 젊은 세대를 양육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고소득의 젊은 세대는 장차 노인들의 연금과 의료비를 감당할 세수를 늘리는 데에 일조할 것이다. 역사적으로 이미 관찰된 바와 같이, 가족 내의 서로 다른 세대에게만 부양 부담을 지우는 일은 대단히 불평등한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사회 구성원 모두가 위험을 분담해야 한다.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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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나라에서 초등교육과 중등교육은 무상으로 제공해야 한다는 데에 이견이 없지만,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유아교육은 전통적으로 가정의 책임이라는 생각이 팽배하다. 그러나 최근 이루어진 여러 연구들에서 드러났듯이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아이들에게 공평한 출발의 기회를 부여한다는 점, 또 그것이 가져올 사회적 편익이 광범위하게 적용된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유아교육에 더 많은 공적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적어도 극빈층 가정을 지원하는 유아교육만큼은 사회계약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것이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타당하다. (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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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모든 나라에서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보다 더 건강하고 오래 산다. 이는 부자가 건강한 몸을 유지하기에 더 좋은 기회를 얻었음을 나타낸다. 좋은 기회는 영유아기의 경험, 교육 및 개인의 회복력과 그가 속한 집단의 회복력, 좋은 직장과 근로 조건, 건강한 삶을 영위하기에 충분한 소득, 건강한 거주 환경, 그리고 흡연과 비만 같은 문제에 대한 공중보건 정책들에서 비롯된다. 이 6개 영역에 국가가 효율적으로 개입한다면 사회 구성원에게 더 나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에 드는 비용을 대폭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이들 영역은 모두 보건의료체제의 품질 자체와는 무관하고, 오히려 이 책에서 다루는 사회계약의 여러 측면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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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근로연계 복지위원회Danish Workfare and Disruption Council는 조직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우리는 모든 사람이 미래의 승자가 되게 만들어야 한다. 변화로 이득을 보는 사람들과 변화 때문에 뒤처진 사람들로 분열되어서는 안 된다." 이는 초등교육부터 직업교육에 이르기까지 고용 가능성이 낮은 사람들(장애인, 이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 저기술 노동자들)을 지원하는 데에 초점을 맞춰서 종합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계획을 마련하는 것을 의미한다. (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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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나라에서는 극빈층에 최저소득을 제공하고 사회가 부유해지면 최저소득을 점차 늘려나가는 것이 좋다. 이미 최저소득을 실행할 수 있는 선진국에서는 실직자들이 최저소득에 만족하지 않고 일터에 복귀하도록 지원하는 정책을 마련할 수 있다. 노동의 유연화로 초래되는 위험에 대해서는 고용계약 형태와 무관하게 모든 사람에게 복지 혜택을 제공해 소득의 안정성을 늘리는 방법으로 균형을 잡을 수 있다. 설령 직장을 잃더라도 그로 인한 위험을 사회가 함께 분담하리라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구성원들의 불안감이 상당히 감소한다. (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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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사람들이 너무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노후를 충분히 대비하지 못한 채로 너무 일찍 은퇴한다는 데에 있다. 이와 동시에 고령화 사회에서는 출산율 감소도 문제이다. 어린 세대가 향후 생산적인 일꾼으로서 더 많은 고령 인구를 부양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투자를 받아야 한다. 즉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려면 저축과 투자 두 가지를 모두 확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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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과거보다 늘어난 노년기를 보내게 될 것이다. 이번 장에서 상상해본 새로운 사회계약은 일할 능력이 되는 사람에게 더 오래 일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그 대가로 노년에 더 많은 사회보장을 얻게 하자는 것, 그리고 가능한 한 오래 혼자서 자신의 집에서 살아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자는 것이다. 더는 독립적으로 생활하지 못하는 노인을 돌보는 책임은 지금까지 대부분 여성에게 떠맡겨졌지만, 이제는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이 책임을 분담해야 할 것이다. 노년 세대를 지원하는 일을 공동의 책무로 삼을 때 노후에 궁핍하고 불안정한 삶에 직면할 위험을 소거할 수 있다. 노년 세대는 우리를 키우고, 오늘날 우리가 생산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기반시설과 제도를 구축한 사람들이다. 이것은 세대 간의 사회계약을 다시 쓰기 이전에 유념해야 할 중요한 사실이다. (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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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세대와 미래 세대 간의 지속가능한 사회계약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정의를 해왔다. 전 세계적으로 지속가능한 개발을 장려하기 위해서 UN이 1987년에 구성한 브룬틀란 위원회는 지속가능한 사회계약을 가리켜 "미래 세대가 그들의 필요를 충족하는 데에 필요한 여건을 훼손하지 않는 방식으로 발전을 이루고 현재의 필요를 충족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4년 뒤 경제학자 로버트 솔로는 "지속가능성이란 우리의 후계자들을 빈곤하게 만들어가며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지 말라는 명령"이라고 말했다. 현재 세대와 미래 세대의 복지가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는 현재의 소비와 다음 세대를 위한 대비 및 투자 사이에서 각각의 장단점을 살펴야 한다. 문제는 오늘날의 시장이나 정치체제에 미래 세대를 대변하는 사람들이 없고, 그들의 이익을 사회계약에 보장하기 위한 협상에 당사자가 참여할 수 없다는 점이다. (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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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고래 한마리는 200만 달러의 탄소 제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추정되었다(둥근코끼리 한 마리는 176만 달러의 가치가 있다). 전 세계적으로 고래의 수효를 회복하면, 탄소량을 줄이기 위해서 20억 그루의 나무를 심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자연은 세계 최고의 탄소 포집 기술을 지녔으며, 이와 같은 자연의 서비스를 추정치에 포함시킨다면 우리는 미래를 위한 투자를 좀더 잘 하게 될 것이다. (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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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을 종합해볼 때 새로운 사회계약을 구성하는 핵심 항목은 무엇인가? 가장 기본적인 것에서부터 시작해보자. 모든 사람은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는 데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을 보장받아야 한다. 최저소득, 교육받을 권리, 필수의료 서비스, 노인 빈곤 예방을 위한 복지가 그것이다. (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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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에게 많은 것을 의지한다. 더 많은 계층의 이익을 포함하고 더 많은 복지 혜택을 지원하는 사회계약은 이러한 상호의존성을 인정하고, 모든 사람에게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을 보장하며 함께 위험을 분담하고, 모든 사람에게 가능한 한 오래도록 사회에 많이 이바지하라고 요청하는 내용이 될 것이다. 핵심은 복지국가의 건설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투자하고, 위험을 공유하여 전반적인 복지 수준을 높이는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다. 기술의 진보, 인구 구성비의 변화, 환경의 변화를 고려해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라도 사회계약의 변화는 불가피하다. 문제는 그러한 변화에 대비하느냐 아니면 최근 수십 년 동안 해왔던 대로 변화를 촉진하는 여러 요인들에 사회가 시달리도록 계속 방치하느냐는 점이다. (272)
이기적 인류의 공존 플랜
What We Owe Each Other: A New Social Contract, 2021/미노슈 샤피크
Minouche Shafik/이주만 역/까치 20220325 324쪽 17,500원
사회계약의 필요성과 상호의존성을 제시하는 훌륭한 참고서이다. 결국 사회제도가 작동하는 방식인 사회계약은 자원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로 귀결한다. 개인과 가족, 사회와 시장, 국가가 어떻게 분담하느냐가 관건이다. 정답은 없다. 처한 환경과 법률과 제도, 문화와 규범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기회를 놓치면 1온스로 예방할 것을 1파운드로도 치료하지 못할 수 있다.
역병의 시대를 겪은 지금이 진정한 21세기의 시작이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가지 않은 길로 돌진하는 용기와 도전이 절실한 때이다. 중대한 갈림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