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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 안과에서 정기 검진을 받고 돌아왔다. 그 안과는 내가 열다섯 살 때 지금의 병을 선고받은 병원이다.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내 병은 여전히 불치병이다. 세상이 이토록 바뀌고 있음에도 말이다. (21)
  • '극복'이라는 말처럼 오만한 단어가 있을까? 장애를 극복하고, 가난을 극복하고, 불합리한 사회를 극복했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생각한다. 나는 영원히 내 장애를 극복하지 못할 거라고. 나는 단지 자주 내 장애를 잊고 산다. 잊어야지만 살 수가 있다. 그래서 누구보다 빨리 체념한다. 그것이 나를 지키는 방법이다. (38)
  • 외조부가 없는 고향은 낯선 언어로 듣는 익숙한 노래처럼 어색하고 괴기스러웠다. 외조부가 지키지 않는 고향은 더는 본향이라 할 수 없었다. 순간 깨달았다. 인간의 귀소본능이란 태어난 장소로 돌아가려는 것이 아니라 결국 사람에게 돌아가고 싶어하는 그리움이라는 것을. 외조부 앞에 포와 술을 올리고 무릎을 꿇었다. 빈손으로 돌아온 방아깨비만도 못한 외손녀는 용서를 비는 대신 열 살 계집아이로 돌아가 낮잠이 드신 외조부께 다라니경을 암송해드린다. 외조부는 찔레꽃 향기가 되어 내 손등을 도닥여주신다. (60)
  • 진정한 복수는 모욕을 주는 것도 용서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상대를 동정하는 것이라는 걸 그때 알았다. (77)
  • 열두 살의 나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얼른 돈을 벌어 나 때문에 팔려간 암소를 되찾고 싶었다. 우리가 소작 부치고 있던 땅도 엄마에게 사주고 싶었다. 그게 나의 꿈이었으며 성치 못한 자식의 속죄였다. 중학교 때 장래희망을 발표할 일이 있었다. 나는 확고한 신념처럼 '경리'라고 적어 냈다. 담임선생님은 내 장래희망을 보고 한심한 눈초리로 너는 어떻게 꿈도 없냐고 쏘아붙였다. 꿈이 있었기에 그리 적어 낸 것임을 그녀는 알지 못했다. (101)
  • 내 몸 불편하니 어린애를 눈으로 써먹자고 낳으라니요? 어머니는 이 몸을 하고 장성한 자식 주고 싶어 김치 담그셨다면서요. 어린애 부려먹고 살라는 이야기는 그만하세요. (120)
  • 내게는 밤과 낮의 경계가 없다. 단지 시간으로 밤과 낮을 구분할 뿐이다. 나를 좋은 사람이라 했던 어떤 선배는 밤에는 밤의 냄새, 낮에는 낮의 냄새가 난다고 했다. 나는 비웃었다. 냄새는 시간에 따라 바뀌는 게 아니라 방향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158)
  • 마사지 숍까지는 차로 10분 거리다. 예약은 오전 11시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장애인 콜택시는 늦어도 8시부터 호출해야 한다. 기본 두어 시간은 기다려야 연결이 된다. 10분 거리를 3시간에 걸쳐 가야 하는 것, 그것이 앞 못 보는 장애인의 삶이다. 하지만 나는 누구보다 빨리 체념한다. 그것이야말로 불행에서 빠져나오는 가장 빠른 길이다. (185)
  • 나도 글을 써요. 10대 때는 최고의 유작을 한 편 남기고 서른 살 전에 요절하는 게 내 꿈이었어요. 그런데 서른을 넘기면서 꿈을 정정했어요. 내 꿈은 무병장수예요. 누가 봐도 호상이라고 할 때까지 살면서 글을 계속 쓰는 게 내 꿈이고 목표예요. (198)
  • 나는 그동안 실패가 두려워 장애를 핑계삼아 하고 싶은 일들을 포기해왔다. 잃어버린 것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다르다. 다르게 살려 노력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일로 만들기 위해,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기 위해 용기를 낸다. 탱고 수업은 내게 첫 도전의 시작이었고 내 가슴에 열정을 심어주었다. (203)
  • 출산 당시 생활고에 시달렸던 엄마는 나를 보육원에 맡기려고 마음을 먹었던 것이다. 엄마는 하루만 더 아기에게 젖을 먹이고 싶었다. 다음날 또 하루만 더. 차일피일 미루다보니 보육원에 보낼 생각이 점차 사그라졌다. 그렇게 60일이 지났다. 나는 엄마의 눈물을 먹고 자랐다. (227)
  • 나의 새로운 장래희망은 한 떨기의 꽃이다. 비극을 양분으로 가장 단단한 뿌리를 뻗고, 비바람에도 결코 휘어지지 않는 단단한 줄기를 하늘로 향해야지. 그리고 세상 가장 아름다운 향기를 품은 꽃송이가 되어 기뻐하는 이의 품에, 슬퍼하는의 가슴에 안겨 함께 흔들려야지. 그 혹은 그녀가 내 향기를 맡고 잠시라도 위로를 받을 수 있다면 내 비극의 끝은 사건의 지평선으로 남을 것이다. (238)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조승리/달 20240329 240쪽 16,800원

조승리 작가를 포함한 세 명의 시각장애인이 대만으로 여행을 갔을 때 마주친 한국인 할머니들이 이런 말을 건넸습니다. "앞도 못 보면서 여길 힘들게 뭐 하러 왔누!" 걱정을 담은 말이었지만 보이지 않아도 보고 싶은 욕망을 뭉개는 소리였습니다. "비장애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일상"이지만 장애인들에게는 특별함이라는 걸 몰랐습니다.

일전에 부끄러운 짓을 했습니다. 1층에서 승강기를 기다리는 데 15층에서 한참 정지하다가 내려오더군요. 누굴 기다리며 지체하는 줄 지레짐작했습니다. 따로따로 타라며 속으로 욕을 바가지로 했습니다. 1층에 도착한 승강기 문이 열리며 휠체어를 탄 장애인과 도우미가 내렸습니다. 어떤 사정인지도 모르고 고작 몇 초를 기다리지 못해 속으로 욕한 저를 반성했습니다.

조승리 작가는 열다섯 살 때부터 시력을 잃기 시작해 이십 대 중반에 전맹(全盲)이 됐습니다. 유일한 취미는 책읽기였지만, 지금은 탱고를 배운다고 합니다. 글도 많이 쓰고 있답니다. 팟캐스트에서 얘기한 것처럼 세상을 유쾌하게 휘젓고 다니길 바랍니다. 많은 걸 보고 알려주세요. 스페인에서 어떻게 치마를 흔들었는지 참말로 궁금합니다.